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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사진

고집의 대가 안,강,최씨

by 안광승 2009. 6. 26.

               

 

 

 

고집(固執)의 대가(大家) 라고 소문난 성씨, 안(安), 강(姜), 최(崔)

 

나는 어려서 외삼촌으로 부터 볼따귀 를 꼬집히며 이런말을 들었다.

"이쪽은 심술, 이쪽은 고집" 이런말을 들을때 마다 나는 크게 소리치면서

"아 니 야" 하며 울곤 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외삼촌 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셨는지 지금의 나는

만약 외삼촌이 살아 계셨다면 훨씬 나아 졌을거란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외삼촌께선 나를 사랑 하셨고 대단히 훌륭하셨던 분 이었기 때문에 많은

가르침을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외삼촌의 소개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나는 어려서부터 고집쟁이

자주 들으며 성장했다.

 

나는 안씨가 소문난 고집쟁이 라는걸 알게된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있다가 회사내 "근무시간 변경의 건"을 처리할때 직장 상사로 부터 

"역시 소문대로 안, 강, 최 로구만,," 이란 말을 듣고 그때 부터 내가 아니

안씨가 고집의 대가 라는 걸 알게됬다.

 

그러나 내가 고집불통 이라고 느껴 본적은 없고 오히려 정의파(正義波)

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그런 고집이 있는 의리(義理)의 사나이라고 자부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고집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며 내가 어느

고집에 해당되나 하고 아무리 살펴 보아도 해당 되는 곳이 없다.

 

고집불통 (융통성이 없이 자기 주장만 계속 내세우는 사람)

쇠고집 (몹시 센 고집을 갖고 있는사람)

옹고집 (억지가 매우 심하며 자기 의견만 우기는 사람)

외고집 (융통성이 없이 외곬으로 고집 부리는 사람)

황고집 (고집이 몹시 센 사람. 평양 황고집에서 유래한 말)

 

아무리 보아도 내고집은 합리적 인데 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일까?

그래서 고집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기에는 최(崔)씨가 제일 지독하고 고집이 센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씨 앉은 자리엔 풀도 않난다는 말도 있다.

이말은 고려말의 명장 최영 장군의 행적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영 장군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汝當見金如石)’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한평생 재물을 탐하지 않았으며, 당시 도처에서 출몰하던 왜구와

홍건적을 무찔러 많은 전공을 세웠고, 지금의 국무총리 격인 시중(侍中)

이 되어서는 꺼져가는 고려사직을 끝까지 지키다,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세력에 의해 처형을 당하게 된다.

그가 죽음에 임하면서 ‘내가 생전에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일을 했더라면

내무덤에 풀이 날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않을 것이다’고 했는데

그의 무덤에 정말로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의 무덤(경기도 고양)은 수백년이 지나 조선이 다 망하고 난

다음에야 후손들이 그의 무덤에 잔디를 입혔다고 한다.

그래서 최씨 앉은 자리엔 풀도 안난다 는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한술 더 떠서 강(姜), 안(安)씨는 더 대단하다는 것이다

최씨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난다.

강씨는 스쳐 지나 가기만 해도 풀이 안난다.

안씨는 생각만 해도 그 자리에 풀이 안난다.는 말도 있으며,

 

재미난 예기로 안(安)씨는 뿔이 한개라 한번먹은 마음은 절대 변치않고

그 다음으로 강(姜)씨는 뿔이 두개라 한번먹은 마음도 두번까진 유도리

가 있으며 최(崔)씨는 뿔이 세개 이기 때문에 안씨 나 강씨 보다는 훨씬 

부드럽다는 예기도 있다.

 

또 한가지 재미난 예기로, 어느동네에 안, 강, 최씨 가 잘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의 아들들도 아주 절친하게 지내던 중, 어느날 집에서 전답 문서를

몰래 똑같이 가지고 나와서 한양땅에 가서 큰사업을 하기로하고 마침내

일을 저질렀지만 사기꾼을 만나 모두 망하고 거지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후 최씨네 아들은 집에 들어가 석고대죄 하고 아버지께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강씨네 아들은 집에 들어가 석고대죄 하였지만 끝까지 용서받지

못하여 뒷산에 목을 매었다고 한다.

그후에야 그의 아버지는 시신을 거두어 수습하고 용서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안씨네 아들은 석고대죄를 해도 안되니까 강씨네 아들처럼 목을

맸지만 그의 아버지 안씨는 "우리와는 상관 없는놈" 이라고 끝까지 용서

하지 않았다는 확인할 수 없는 예기도 있다.  

 

 

글을 쓰다보니 고집 쎈 것이 자랑인지 수치인지 분간이 안된다.

그러나 지나친 고집은 결코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지 안는다는것을 알수

있지만 그렇다고 자기주관도 없이 거수기 노릇만 하는 모 국회의원들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적당한 타협과 주관이 어우러 질때 생산성 있고, 영양가 있는 좋은 의견

이 결정 될 수 있으며 양보와 배품이 자리잡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겠다 는 생각을 하며 글을 접는다.

 

 

                                                                          글 씀.....안 광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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