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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따뜻한 하루의 감동 글

by 안광승 2016. 7. 16.



내가 열두 살이 되던 이른 봄,
엄마는 나와 오빠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당시 중학생인 오빠와 초등학생인 나를 아빠에게 부탁한다며 떠나신 엄마.
남겨진 건 엄마에 대한 추억과 사진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엄마는 사진 속에서 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엄마의 몫까지 채워가며
우리 남매를 길러야만 했습니다.

그게 힘겨워서였을까? 아니면 외로워서였을까?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아빠는 새엄마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빠의 말씀을 우리 남매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아빠의 매타작이 시작되었고,
오빠는 어색하게 "엄마"라고 겨우 목소리를 냈지만,
난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부를 수 없었습니다.

왠지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돌아가신 진짜 엄마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종아리가 회초리 자국으로 피멍이 들수록 난 입을 앙다물었습니다.
새엄마의 말림으로 인해 매타작은 끝이 났지만,
가슴엔 어느새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새엄마를 더 미워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 방에 있던 엄마 사진을 아빠가 버린다고 가져가 버린 것입니다.
엄마 사진 때문에 내가 새엄마를 미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새엄마에 대한 나의 반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새엄마는 분명 착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은
그 착함마저도 위선으로 보일 만큼 강렬해졌습니다.
난 언제나 새엄마의 존재를 부정하였습니다.

그해 가을 소풍날이었습니다.
학교 근처 계곡으로 소풍을 갔지만,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습니다.
소풍이라고 집안 식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점심시간이 되고 모두 점심을 먹을 때,
계곡 아래쪽을 서성이고 있는 내 눈에 저만치 새엄마가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김밥 도시락이 들려있었습니다.

뒤늦게 저하고 같은 반 친구 엄마한테서
소풍이라는 소식을 듣고 도시락을 싸오신 모양이었습니다.
난 도시락을 건네받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 물에 쏟아버렸습니다.
뒤돌아 뛰어가다 돌아보니 새엄마는 손수건을 눈 아래 갖다 대고 있었습니다.
얼핏 눈에는 물기가 반짝였지만 난 개의치 않았습니다.


*********************************************************


그렇게 증오와 미움 속에 중학 시절을 보내고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입 진학상담을 해야 했습니다.
아빠와 새엄마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인문고 진학을 원하셨지만,
난 산업체 학교를 고집하였습니다.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기 싫었고,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했습니다.
결국, 내 고집대로 산업체 학교에 원서를 냈고
12월이 끝나갈 무렵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 가방을 꾸리는데 새엄마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더 모질게 결심했습니다.
정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학교 기숙사에 도착해서도 보름이 넘도록 집에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갈 무렵
옷 가방을 정리하는데 트렁크 가방 아래
곱게 포장된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분명 누군가 가방 속에 넣어놓은 비닐봉지.
봉투 속에는 양말과 속옷 그리고 핑크빛 내복 한 벌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지런한 글씨체로 쓴 편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편지지 안에는 아빠가 가져간 엄마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새엄마는 아빠 몰래 사진을 편지지에 넣어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제껏 독하게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의 앙금이 눈물에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그날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 처음으로 집을 찾아가게 된 날이었습니다.
난 아빠, 엄마, 그리고 새엄마의 내복을 준비했습니다.
그 날은 밤새 눈이 많이 내려 들판에 쌓여있었습니다.
멀리서 새엄마가... 아니 엄마가 나와서 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엄마 손에 들려있는 빗자루 뒤에는 훤하게 쓸린 눈길이 있었습니다.

'엄마.. 그동안 저 때문에 많이 속상하셨죠?
죄송해요. 이제부턴 이 내복처럼 따뜻하게 모실게요.'

어색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으로 웅얼거리는 모습을 본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따뜻한 두 팔로 날 감싸 안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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