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 광 승 카 페
나의 글 ,사진

정조의 인재등용 야화 / 안광승

by 안광승 2009. 4. 8.

 

                            

                                                                   박생원

 

 

 

정조(正祖)는 조선왕조의 제 22대 왕이다.

정조 하면 우선 탕평책으로 당파싸움을 중단시킨 왕으로 유명하다.

 

정조는 영조의 둘째 아들 뒤주대왕 인 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 났으며,

할아버지 영조의 배려로 비운에 세상을 떠난 그 아비를 대신 해서 8살 되던 해에

왕세손에 임명되고 그후 영조가 승하하자 25살 나이로 조선 임금으로 즉위 하여

1800년까지 24년 동안을 통치를 하였다.

 

정조는 탕평책(당파를 초월해 벼슬을 내려 인재를 고루등용하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선 자기를 따르는 신하가 필요 했으나 모든 벼슬아치들이 각기 당파에 소속

되있어 수월치 못했고, 어떻게든 파벌에 소속 되지않은 새 인재를 찾아야 했다.

 

그런 정조는 미복(사복)으로 전국을 다니며 밖에서 인재들을 찾아서 등용하기를

좋아했는데, 미복으로 민중시찰을 하면서 일어났던 한 야화를 소개하고져 한다.

 

(실존인물 이라고는 말할수 없고, 필자가 그냥 재미있게 구성해 본 것입니다)

 

 

 

정조가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아버지(사도세자) 의 묘(현릉) 을 참배하고 미복으로

갈아 입은뒤 거리를 걸어서 가던중, 어느길가 에서 모녀가 아비의 초상을 치루기

위해 통곡을 하며 묘 를 쓰려 하는데 가만히 보니 그자리는 줄초상이 날 상스럽기

짝이없는 흉소(凶沼) 인지라 정조가 그들에게 다가가 "그묘자리 누가 정해주었소"

하고 물었더니 그 어미가  하는말이 "뒷마을 박생원 이 정해 주었습니다" 한다.

정조가 속으로"괴씸한놈" 하고 생각하고 모녀에게 자초지종을 예기하며 묘자리를

옮기라고 했더니 "그 휼륭한 분이 정해 주었는데 왜그러냐" 고 말을 듣질 않는다.

할수없이 정조는 몸에 지니고 있던 값나는 폐물과 금전을 주고 설득하여 다른 곳

으로 자리를 옮겨 초상을 치뤄주고서야 자리를 뜰수 있었다.

 

천만다행 이라 생각하며 한참을 걸었다.

오시(午時: 12시) 가 될 무렵 어느 동네를 지나는데, 누구네집 혼례를 치루는 것이

눈에 띈다 정조가 또 가만보니, 이시간에 신랑, 신부 맞절을 하면 오늘밤 소박맞을

시간대 가 아닌가... 아뿔사...

정조가 황급히 뛰어 들어가 방해를 놓고 시간을 반식경쯤 드텨 놓았는데 잔치망쳐

놓았다고 식구들이 난리를 치는통에 가지고 있던 금전을 모두주고 무마를 했다.

그런후 혼주에게 "누가 이 혼례시간을 잡았소"하고 물으니, 또 뒷마을 박생원 이라

하지 않는가, 정조는 속으로 "어떻게 생겨먹은 놈 이기에 이렇게 짖꿎은 짓을할까"

하고 능지처참을 할 놈이라 생각하며 뒷마을 박생원의 집으로 향했다.

 

 

박생원의 집은 뒷산 넘어, 다~쓰러져 가는 오두막집 이었다.

 

원래 박생원은 검소하여 자리나 시간을 정해 주고도 보리쌀이나 쬐~끔 받는 양심은

옳바르다 는 칭찬이 자자한 사람 이었다.

정조가 싸릿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문이 열리며 박생원이란 놈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정조앞에 큰절을 올린다.

정조가 " 네 이놈 내가 누군줄 알고 큰절을 하느냐" 하고 물으니

박생원이 " 이 나라의 임금님을 어찌 모르겠나이까" 이렇게 말하며

"제 사주에 임금님이 이시각에 우리집에 오시기로 되어 있나이다" 라고 말한다.

 

정조가 보니 예사스런 놈이 아닌지라 " 그럼 어찌하여 묘자리를 줄초상 날 자리를

정해  주었고, 소박맞을 시간에 혼시를 잡아 주었냐" 고 물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 묘자리는 임금님이 금전을 하사하고 더좋은자리를 

임금님이 정해 줄 명당중에 명당이며, 혼사시간은 임금님이 주례를 보고 부조금을

내놓을 너무좋은 시간이라 잡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정조가 무릎을 치며 정말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너처럼 똑똑한 놈이 어찌하여 이런 산속에서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박생원이 대답한다 " 오늘이 오기를 기다렸 나이다 "

 

그후 정조는 그를 대궐로 불러들여 정조의 업적중에 유명한 규장각의 정3품 내직

으로 등용했으며 규장각의 서리직으로 근무했다 한다.

 

(그런 직이 있었나?...ㅎㅎㅎ)

 

.

 


즐겁게 감상하시고 꼬릿말을 달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 안광승 카페 ▒

http://cafe.daum.net/akseung


'나의 글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도를 표 합니다  (0) 2009.05.24
아직도 건재한 백목련  (0) 2009.05.09
얼굴의 뜻은?  (0) 2009.04.06
[스크랩] 귀여운 안수아, 안지훈  (0) 2009.03.25
암에 대한 공포  (0) 2009.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