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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이 이란을 이겨야 하는 7가지 이유

by 안광승 2009. 6. 17.
스포츠서울닷컴 | 김현회기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살다보니 우리가 '경우의 수'의 열쇠를 쥘 때도 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오는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질 이란과의 경기 결과를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의 운명이 결정된다.

한국이 이란에 승리를 거둘 경우 18일 벌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이 비기기만 해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직행한다. 하지만 한국이 이란에 패할 경우에는 사우디-북한전 승자가 본선에 나가고 만약 양 팀이 무승부를 거두면 이란이 천신만고 끝에 남아공행 티켓을 잡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한다.

그동안 지겹도록 '경우의 수'를 따졌던 축구팬들은 허정무호가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획득해 긴장감이 떨어졌다고 배부른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자의 여유를 갖고 이란전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된 한국이 이란을 이겨야 하는 이유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의 정신 건강을 해치던 '경우의 수'를 벗어나 이 잔인한 경기를 닭다리나 뜯으며 볼 수 있게 해준 허정무 감독과 선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여유를 한 번 부려보자.

 

1. 언제까지 '식스투'할래?

이란 녀석들 참 뒤끝 한 번 끝내준다. 지난 1996년 UAE에서 벌어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에 6-2 대승을 거둔 이란은 아직까지도 이때의 대승을 들먹거린다.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관중들이 "식스투"를 연신 외치고 '6-2'라는 플랜카드도 경기장 곳곳에 붙는다. 올 2월 테헤란에서 벌어진 최종예선 4차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13년 전 경기로 도발하며 과거에 집착하는 이란에게 쓰디쓴 현실을 맛보게 해줄 때가 왔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승리해 이란이 2010 남아공월드컵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게 만든 뒤 다음 맞대결에서도 "식스투"를 외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자. "남의 잔치는 재미있게 보셨어요?"

2. 서울이 지옥이다

지난 2월 허정무호의 이란 원정 경기를 앞두고 이란의 핵 자바드 네쿠남(오사수나)은 "아자디 스타디움은 한국 팀에게 지옥이 될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결국 이 경기에서 이란은 한국에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은 지옥 입구에서 발을 뺀 셈이다.

이에 대해 이번 경기를 앞둔 기성용은 "이란의 경기장 등 시설이 좋지 않아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에 반해 한국은 천국이다. 좋지 않은 대접을 받았으니 이번 경기서 꼭 승리하고 싶다"고 밝혔고 박지성도 "이란이 이번에도 천국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자,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승점 상황 등 이란에게 지옥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를 모두 갖췄다. 이제는 서울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실력으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3.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압신 고트비 감독이 있어야 할 곳은 이란 벤치가 아니다. 한국 대표팀 비디오 분석관으로 2002 한일월드컵 신화 창조에 힘을 보탠 그는 2006 독일월드컵 때에도 코치로 한국을 이끌었다. 한국으로서는 유용한 코치 자원인 그가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합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트비 감독은 입국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잘 알고 모든 선수를 파악하고 있다"면서 "특히 파주는 내게 고향과도 같다"고 밝힌 바 있다.

비록 한국과의 결별 과정에서 올림픽 대표팀 골키퍼 코치를 맡고 있던 코사를 자신이 지휘봉을 잡은 페르세폴리스로 '빼돌린' 죄는 괘심(?)하지만 그가 한국을 위해 다시 일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한국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고트비 감독이 한국의 월드컵 본선 무대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이란을 우리 힘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란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고트비가 백수가 되면 너그럽게 우리가 그에게 손을 내밀자.

4. '서울의 기적'

기자는 빨갱이가 아니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2년간 군 생활을 했고 지난 10일 벌어진 사우디와의 아시아예선은 동원 예비군 훈련으로 인해 취재도 가지 못한 '예비역 병장'이라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하지만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북한이 진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는 않겠다. 최근 개성 공단 문제와 북핵 문제 등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됐지만 스포츠까지 꼭 정치적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

지난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1994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북한과의 경기를 앞둔 한국은 절박했다. 이미 탈락이 확정된 북한을 두 골차 이상으로 이기고 다른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당시 북한 감독은 한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와 관계없는 일본을 왜 월드컵에 나가게 합니까. 남조선이 나가야지요." 고의적인 패배는 아니었지만 결국 한국은 북한을 3-0으로 꺾고 '도하의 기적'을 연출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서울의 기적'을 연출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5. 반사적 이익

위의 이유가 너무 감정적이라고? 그렇다면 북한이 월드컵에 나갈 경우 우리가 얻을 반사이익을 생각해보자. 한국이 이란을 이기고 북한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줄 경우 한국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된 팀들은 북한의 스파링 상대로 한국을 지목할 가능성이 99%다.

대한축구협회 조중연 회장이 "유럽 강팀과 평가전을 치르겠다"고 밝힌 것처럼 한국은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이번에는 평가전 상대를 '제대로' 고르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북한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서게 된다면 우리가 강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전에 상대팀이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밀게 될 것이다. 북한이 브라질, 네덜란드, 나이지리아 등과 함께 '죽음의 조'에 속한다면 금상첨화다. 이렇듯 북한이 꼭 월드컵에 나갈 수 있도록 한국은 이란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6. 유종의 미

지난 2002 한일월드컵 영상 자료를 보면 아직도 아쉬운 장면이 있다. 4강까지 오른 한국은 마지막 경기인 3,4위전에서 터키에 2-3으로 패한 뒤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 숙인 채 관중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한국 선수들은 이 경기 승패와 관계없이 웃는 게 더 좋았겠지만 승부를 펼치는 이들에게는 4강이라는 업적보다 방금 당한 패배가 더 뇌리에 남은 듯 보였다. 지금도 가끔 이 장면을 돌려보면 터키 선수들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관중석에 인사하는 태극전사들의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영상에 한국 선수들은 별로 기뻐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런 면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일찌감치 통과한 한국은 마지막 경기인 이란전을 이기고 웃으면서 이 대장정을 마무리했으면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훌륭한 성적으로 예선을 치러냈음에도 마지막 경기에서 져 고개를 숙인 채 관중석을 향해 억지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이란전 단 한 경기를 그르쳐서 나머지 예선을 훌륭하게 치르고도 '썩소'를 날릴 허정무 감독의 모습을 원치는 않는다. 이란전을 이겨야 안방에서 헹가레도 치고 세레모니도 하는 것 아닌가.

7. 월드컵 흥행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북한이 본선에 나서야 월드컵도 더 크게 흥행할 수 있다. 기자는 북한과 미국이 같은 조에 속해 '진짜 전쟁' 말고 '축구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한국이 이란을 이긴다면 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자 이제 우리는 이란전을 즐길 일만 남았다. 문 밖에선 세 명씩이나 휴지를 들고 배 아파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에서 변기에 앉아 여유 있게 담배 한 대 물고 스포츠신문을 보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은가.

< 사진 =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 스포츠서울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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