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며../ 안광승
내가 국민학교 3 학년때 나를 외가집에 맡기시고
나의 어머니는 어느 시골교회 목사님과 재혼의 새길을
떠나셨다.
외가집에서 자라던 나는 외삼촌이 위암으로 하늘나라
에 가시는 바람에 이세상 에서 나를 돌봐줄 사람은 어디
에도 아무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막막 했었는데..
얼마 있다가 어느날 큰집 할머니가 오셔서 날 데리고 간
곳이 큰아버지댁 이었다.
그 날 할머니와 큰어머니는 집안이 떠나갈듯 내뒤에서
시끄러운 다툼이 있었고 난 쥐구멍 이라도 있으면
들어가서 숨고 싶었다.
어쨋던 한번은 치뤄야 할 수순이었다.
그 날 이후.. 큰집에서 나는 결혼 할 때 까지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보살핌 속에서 성장했다.
요즘사람 들은 모르지만 보리고개 때 식량부족으로
식구가 13 식구인 대가족에 조카자식 까지 데려와서
한 입이 늘어나는데 누군들 반가웠겠는가
지금은 이해가 가지만 그 당시는 왜그렇게도 서글퍼
세상이 싫었고 원망 스럽던지 집에서 말썽도 많이
부리며 행패도 많이 부렸었다.
학교 다니는 사람이 삼춘 3명 사춘 4명 나 까지
8명의 도시락만도 부뚜막에 산더미처럼 쌓인다.
먼저 나오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큰 것 가지고 간다.
큰아버지는 나와 막내삼촌이 싸우면 삼촌만 때리고
나는 조용히불러 야단만 치시고 좋아하시는 낚시터
에도 나만 데리고 낚시를 가신다.
그러나 큰어머니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못마땅해
매일 큰소리 치며 야단만 치신다.
어떨때는 내가 유행가"동백아가씨"를 부르고 있으면
그것좀 가르쳐 달라고 하셔서 내가 종이에 적어서 한
두시간 가르치드리면 혼자서도 잘 부르며 좋아하신다.
우물에서 물지개로 물 길어 오면 그것도 좋아 하신다.
그렇게 비위를 맞추면 ? ...ㅎ
한 일주일은 사이가 좋아져 내가 편하게 산다.
때론 사촌동생들 때린다고 야단치고
학교에 돈 많이 가져간다고 야단치고
늦게 들어온다, 머리 기른다, 놀러만 다닌다 등등..
내가 뭐든지 하면 늘- 불만이시었다.
결혼하고 등 따스워 지니까
큰어머니 에게 구박받고 살아 온 것 만 기억이 나서
큰집에도 가지 않게 되고 불평만 생기더니
큰집 과는 담을 쌓게되고 사촌들과도 멀어지게 된다.
늘-건강하시고 기세 등등한 큰어머니도 80 이 넘으시며
약해지시더니 드디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하늘나라
로 조용히 떠나셨다.
나는 눈물도 안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영정 사진을 뵙는 순간 나의 어머니보다 더 깊은
사랑을 주신 큰어머니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야단만 치시면서도 대학까지 공부시켜 주신 분..
그런 큰어머니의 영정앞에서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사촌들과 부둥켜안고 또 울었다.
큰아버지를 뵙는 순간.. 나의 아버지를 느끼게 된다.
얼굴도 보지못한 내 아버지를 큰아버지를 통해 보게 된다.
85 세의 노구로 힘이 빠지신 큰아버지가
"네가 늘- 눈에 밟힌다" 고 하실 때 나는 엎드려 통곡했다.
아무튼 큰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나는 많은 것을 느꼈고
집안 식구들 과 좋은 관계 로 전환 된 것이 기쁘다.
큰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나에게 주신 값진 선물..
마지막 선물을 주신 것 같다.
큰어머니 !!
부디 하나님나라에서 편안히 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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